존재감 없던 삶에 스며든 작은 변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2005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입니다. 이야기는 도쿄의 한 평범한 주택가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스즈메는 남편이 해외에 장기 출장 중인 상태로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굉장히 정적이며,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동네 슈퍼에서 세일하는 김을 사는 것이 하루의 큰 일이고, 도심의 작은 집에서 금붕어를 돌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주변 이웃들도 그녀에게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녀 또한 특별히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수건을 잃어버린 스즈메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봇대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쪽지를 발견합니다. 그 쪽지에는 단순 명료하게 딱 한마디만 쓰여 있었습니다."스파이 모집". 처음엔 누가 장난 삼아 혹은 무차별로 골려주려고 이렇게 붙였나 싶었지만, 그녀는 그 쪽지가 자꾸만 신경 쓰입니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그 쪽지는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이벤트를 가져다줄 유일무이한 무언가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즈메는 쪽지에 적힌 연락처를 따라 해당 장소로 찾아가게 됩니다. 쪽지를 들고 스즈메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다다미방이 있는 오래된 고택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을 스파이 조직의 일원이라고 소개하는 쿠기타니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이 부부는 마치 영화나 동화에서 빠져나온 인물들처럼 현실감이 떨어지는데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태도로 그녀를 맞이합니다. 그들은 스즈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임무는 티 나지 않게 스파이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사실상 현재의 모습과 달라진 게 없는 일상 그대로 지내면 된다는 설명에 스즈메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묘한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지루한 일상이 스파이 활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 무료한 일상이 점점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조직에 가입하게 되고, 스파이 명찰과 수당, 그리고 금붕어가 들어있는 작은 어항을 받습니다. 스즈메는 어항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무채색이던 일상이 다채롭게 빛나는 것을 느낍니다. 실제로 그녀는 스파이로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며, 남들의 시선도 조심하게 되고,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서도 누군가의 감시가 있을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도 스파이로서의 태도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그러던 중 스즈메는 오랜 친구인 쿠지라와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쿠지라는 스즈메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인물입니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쿠지라는, 생선을 절단하는 알 수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특유의 엉뚱함과 자신감으로 스즈메의 일상에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줍니다. 그녀는 늘 기묘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거리낌이 없습니다. 스즈메는 쿠지라와의 재회를 계기로, 자신이 너무 평범하고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조차 흐릿하게 존재하는 자신과 달리, 쿠지라는 어디서든 중심에 서 있는 인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스즈메는 여전히 조직에서 스파이로 활동 중이지만, 그 활동이라는 것도 사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번은 상부에서 연락이 와서 간단한 지령을 받긴 했지만, 그 내용 역시 매우 무의미했습니다. 김밥을 사라든지 철자 맞추기 퀴즈에 응하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소한 것들이 스즈메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이유가 생겼고, 자신이 지켜야 할 임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상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조직이 갑자기 해체된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상부의 연락은 끊기고, 스즈메는 갑작스럽게 다시 일상의 허무함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녀는 황망한 마음으로 조직의 본부를 찾아가 보지만, 조직은 그녀에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라는 마지막 미션을 주고 문 너머 저편 어딘가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동안 일상의 무기력에서 벗어나고자 스파이라는 정체성을 통해 스스로에게 임무를 부여하며 살아가던 스즈메에게, 그 외부의 역할이 사라진 것입니다. 비로소 스즈메는 그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살아가야 할 시기된 셈입니다. 그날밤 스즈메는 골똘히 생각합니다. 자신이 진짜 스파이였는지, 아니면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면서 누군가가 만들어준 설정에 속아온 건지. 하지만 곧 그녀는 중요한 결론을 내립니다. 그 조직이 사라졌든 아니든, 자신이 그 시간을 통해 삶을 다채롭게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후 스즈메는 오랜 친구인 쿠지라와 함께 거리를 걷다가, 두 사람이 학창 시절 썼던 수첩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즈메는 그 수첩을 보고 예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예전엔 뭔가가 되고 싶었고,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꿈과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은 무채색의 시간 속에 단지 녹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게 됩니다. 스파이 활동이 허구였을지언정,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보려 애썼는지를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쿠지라는 그런 스즈메에게 그저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삶의 다양성과 다름을 말해줍니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거리의 평범한 계단에 앉아,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그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기력 속에서 한 발짝 벗어 나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함과 성숙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즈메는 다시 자신의 집에서, 이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이어갑니다. 남편은 여전히 출장 중이고, 그녀는 여전히 그 좁은 집에서 빨래를 널고, 금붕어를 돌보고, 조용히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녀는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주부로 돌아갔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과 소중함이 가득했습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고, 또다시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치듯 조용하고 느리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우쳤기에 더 이상 조용한 일상이 지겹지 않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는 순간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영화 제목 자체가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메시지 및 가장 명료한 상징입니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문장은 일상적인 고정관념을 깨는 말입니다. 거북이는 느리다고 여겨지지만, 물속에서는 누구보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생물입니다. 이 제목은 주인공 스즈메와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합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의미 없는 사람,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실 내면에는 누구보다 깊고 단단한 내실과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스즈메는 주변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관심을 끌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스파이라는 허구적 정체성을 통해 그녀는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거북이처럼 겉으로는 느리고 둔해 보이지만, 본래 갖고 있는 속도와 방향성을 깨닫는 과정은 그녀의 변화와 일맥상통합니다. 왜냐하면 거북이는 가능성과 내면의 활력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스즈메가 우연히 참여하게 된 스파이 활동은 실제로는 아무런 정보 수집도, 위험한 임무도 수반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지령은 티 나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 즉 원래 살았던 평범한 삶 그대로를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목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무의미해 보이는 활동은 그녀에게 다채로운 삶을 제공합니다. 존재감 없던 자신이, 조직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서 스즈메는 처음으로 자신이 현재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대해 다시 인식하게 시작합니다. 결국 이것은 자기 회복의 상징을 나타냅니다. 사회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어 온 사람들이, 외부의 무언가를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스즈메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냅니다. 스파이 활동은 겉보기에 허무맹랑하지만, 그녀에게는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고, 이는 곧 자기 존중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누구에게나 필요한 건 인생의 명확한 의미가 아니라,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야가 중요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스즈메가 스파이로 채용되면서 받은 보상 중 하나가 금붕어가 들어 있는 작은 어항입니다. 이 어항은 그녀가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 즉 현대사회에 놓인 자신의 처지와 위치를 상징합니다. 금붕어는 어항이라는 제한된 환경 안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계를 유지합니다. 이 설정은, 스즈메가 변화하는 계기를 맞이하더라도 그녀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지만 이전의 스즈메는 그 어항 속에 있는 자신을 갇힌 것처럼 답답하게 느꼈다면, 스파이 활동 이후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어항은 현실의 틀을 상징하지만, 금붕어는 그 틀 안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심벌입니다. 이로써 영화는, 제한된 삶의 조건 속에서도 자아를 확장하며 시야와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지고 오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스즈메의 오랜 친구인 쿠지라는 스즈메와는 정반대의 성격과 삶을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괴짜 같고, 엉뚱하며, 일반적인 사회의 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갑니다. 스즈메는 처음엔 쿠지라를 부러워하지만, 곧 그녀 역시 외로움과 무의미함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쿠지라는 스즈메 내면의 억눌려 있던 자아, 혹은 사회적 시선을 넘어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의 구체화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쿠지라와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 아닌,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에 내면의 균형 회복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로써 영화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더 나아가 나의 정체성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중반 이후, 스즈메가 몸담았던 스파이 조직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해체됩니다. 본부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내던져지듯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스즈메는 좀 더 의연하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스파이라는 역할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었던 그녀는, 이제 그 역할 없이도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만, 이미 그녀는 일상 속에서 거북이가 의외로 빨리 헤엄치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꺠달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스즈메는 스파이라는 타이틀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이는 인물이 되어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완성시키는 인물로 성장했습니다. 평범하고 조용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나지막한 메시지를 건넵니다. 당신이 얼마나 존재감이 없든, 누군가에게 무의미하게 여겨지든, 그건 당신의 본질을 결정짓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스즈메는 누구보다 느리고 조용한 사람이지만, 그녀는 자기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합니다. 스파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은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고, 본질은 삶을 향한 시선의 변화입니다. 그녀는 영화 속 스파이처럼 거창한 임무를 부여받고 그것을 해내는 영웅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이 영화는 특별한 능력이나 업적 없이도 내 존재 자체가 가치 있음을 스즈메를 통해 증명해 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당신도 거북이처럼 의외로 빨리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